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황제 파시즘 (문단 편집) === 일본 제국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천황제 파시즘이다 ===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라고 보는 쪽은 일본 학계와 더불어 허버트 빅스, 베링턴 무어 같은 서양 학자들이다. 일본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1914)|마루야마 마사오]]와 야마구치 야스시는 파시즘 체제를 위로부터의 파시즘과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으로 구분했다. 통상적으로는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지만 일본에서는 파시즘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려면 기존 보수주의 권력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동맹이론>의 결정적이고 극단적인 예시였다는 것이다. 천황제 파시즘 부정론에 대해서 일본 학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의 권력 구조가 군부, 의회, 혁신 관료로 분산되었지만, 거국일치 내각이 1932년에 이미 형성되었으나 천황은 실질적 지도자가 아니었음에도 대중들에게 절대적 카리스마를 행사했다. 또한 쇼와연구회의 핵심 멤버인 류 신타로, 미키 기요시, 료야마 마사미치 등은 정책 고안에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 니시다 미쓰기, 다치바나 고자부로 등의 폭력을 옹호하는 민간 우익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학계 역시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 [[2.26 사건]]을 계기로 소멸[* 그러나 4년 뒤 [[고노에 후미마로]]가 주도하는 신체제운동의 주도로 [[대정익찬회]]가 설립되면서 일본이 잠시 파시즘 국가였던 적은 있었지만 이마저도 1년만에 고노에가 사임하고 통제파 [[도조 히데키]]가 집권하면서 일본 파시즘은 실질적으로 끝장났다.]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5.15 사건]]과 [[진주만 공습]] 등에 대한 일본 대중의 반응 등을 예시로 들어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1935~1936년 국체명징운동으로 일본 정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일소되었을 때 대중적 운동단체 7곳과 언론이 개입한 것 역시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는 증거로 파악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일본 파시즘은 파시즘의 본질을 충족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제국의 자기 우월적이고 스스로를 도덕적이라 믿는, 나치의 [[레벤스라움]]과 흡사한 '광역권'을 바탕으로 한 팽창적 민족주의는 구조적으론 몰라도 사상적으론 파시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론 재니스 미무라, 존 다우어 등이 있다. 특히 브라이어 마이어스는 존 다우어의 논의를 확장하여 북한 체제를 일본 제국의 체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면서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076101|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원제: The Cleanest Race)를 출판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